2009.06.19

Posted 2012. 7. 15. 13:21

지린 햇살이 내방 창가를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 눈을 떴다.

새벽녘부터 내 다리를 찔럿을 질펀한 초여름 햇살덕에 적잖이 끈적한 피부, 할일없는 일요일 아침(?)부터 세수 할리 만무하다.

어찌됐건 이미 아침이 아닌 아침이지만 속은 시끄럽고 맘은 더 시끄러운 상태로 한시간을 뒤척였더니 뒤척임이 더 힘겹다. 나른함을 견디다 못하고는 문득 몸을 일으켜 냉장고를 뒤적이니 다행이 수박화채 한 그릇.

어차피 밥상차리기는 귀찮을테니 아이스크림 한 스푼을 먼저 뜬다.

아주 당연스럽게 컴퓨터부터 켜고, 늘 그렇듯이 네이트온을 더블클릭, 남몰래 들어가기를 살짝 체크한 후 소통이 금지된 메신져에 홀로 접속한다.

아직은 이른 일요일, 100명이 넘는 네이트친구중에 달랑 3명이 휴일을 지키고 있다. 담배 한모금보다 더 가벼운 관계가 넘치는 인간들 중 그나마 담배 한가치의 가치는 가지는 몇몇의 대화명을 확인해본다. 어제나 오늘이나 다름없는 그들의 알림말이 지긋한 내 휴일만큼이나 따분해 싸이월드 홈을 열고는 또 늘 그렇듯 업데이트된 홈피와 클럽 중 엄선해 한군데씩만 들른다.

내홈피 방문자는 1명, 163명의 일촌 중 내가 아직 살아있음을 1년에 한번이라도 궁금해할 사람은 얼마나될까?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찌적이다 오른쪽 상단에 엑스표를 살포시 누른다.

새글일촌은 언제나 가득차 있지만 내가 찾던 이름은 없다. 문득 실시간 검색어에 눈이 갔다가 다시 다음뷰로 옮겨탄다. 이리저리 인터넷을 떠돌다 보니 살짝 배가 고프다. 하지만 아직 상차림의 귀찮음을 초과하지 않기에 대신 담배 한가치를 손에 쥔다.

아.바람이 분다. 아주 습한 바람이다. 바닷가 등대에서 스쳤던 설레는 습함과는 무척 다른,무기력하면서도 꾸짓는듯한 바람이다.

못본척 냉소 한번 날려주고는 서둘러 담배를 끄고 방으로 피한다.

...

...

...

...

이미 어둠이 자리잡은지 오래다. 휴일이 끝나간다. 휴일은 비싼것이다. 예물로 산 화려한 장농같은, 한학기가 지나면 그 가치를 잃고 방치된 두꺼운 전공서적같은,, 오래전 누군가에게 선물받은 디자인이 맘에 안드는 가죽 가방같은... 그런 휴일이 재깍재깍 지나간다.

영화한편, 맥주, 오징어와 땅콩, 게임, 아이스크림, 담배, 빈 핸드폰.

빈 핸드폰... 말 줄임표가 다시 늘어나고 있다.

어제 꺼낸 선풍기는 오늘 밤 드디어 제 몫을 시작했다. 열이 날 만큼 덥지는 않았겠지만 4시간째 손가락만으로 농구를 하던 내겐, 이 지긋지긋한 무기력에 대한 분노를 식힐 바람이 필요했다. 몸이 식는만큼 시간에 흐름에 민감해진다. 갑자기 마음이 다급해지며 집안을 슥적인다. 휴일을 떠내우기 전에 의무적으로 치뤄야만 하는 낭비에 대한 애도 의식 정도일테다. 가책은 없다. 내가 보냈지만 나도 어쩔 수 없었으니, 그래도 마지막 양심은 남았는지 다시 담배 한가치에 불을 붙여 떠나보낸 휴일을 위해 눈 한번은 감아 준다.

영화는 별로였다. 폴더안에 가득한 목록에는 별로 감흥이 없다. 마우스를 잡은 손이 끈적하게 느껴질즈음 바나나 하나를 집어든다. 무미한 씹힙에 살짝 슬퍼졌다가 이내 다시 잠잠해진다.

하루동안 방치해둔 육신은 어느때보다 무겁다. 편안함에 익숙해진 몸 때문에 마음은 더욱 피곤하다. 날카로움에 닿을때쯤엔 다시 그것조차 억누르는 미치도록 무력한 하루.

여전히 빈 핸드폰에 대한 책임은 비싼 휴일을 허비한 나에게 있음을 잘 알지만 또 한번 책임을 회피하며 키보드를 두드린다. 오늘 방문자 수 2. 최근 두달 사이 다이어리에 목록이 눈에 띄게 길어졌다. 잦은 일기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누군가의 이해할 수 없는 말처럼 누군가에게 의미를 가지기 위한 것인가?

마음의 동함이 지극히 깊은곳으로 가라앉았다. 감정을 죽이고 나면 빈 공간에는 차가운 바람만이 가득하다. 어제,,또 어제 내가 나를 통제할 수 없던 시간들이 먼 과거처럼 느껴진다. 싫다. 싫었다. 감정의 넘침은 내게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어울리지 않는다기보다는 맞지 않는다. 어렵고 두렵고 혼란스러움을 가져온다. 훗. 기껏 피한다는것이 시간에 대한 무시다. 그래, 오늘 하루를 무시한거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내일은 또 올것이고 내일은 또 다른 방법을 찾을 것이다.

내일의 내가 어떤 결정을 할지는 모른다. 다만 오늘을 무시하고 싶은 욕구는 충족했다.

혼돈과 규칙이 가득한 이 장문의 글은 이미 보내버린 시간에 대한 마지막 보상인가? 후회인가? 집착인가? 미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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