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안개 시리즈

Posted 2012. 7. 15. 13:26

1.
겨울어스름 안개스민 아침
볼그스름한 이른 봄, 스며시 숨어오려나.

 



2.
겨울비 멎은자리, 새벽안개 가득한데
더디온다 애터우던 봄님의 향기한점
뭐그리 부끄런지 선홍빛 쓰게치마 덮고오네.

 



3.
초큼은 이른 아침, 
솜사탕같은 이불과 헤어지려니 왜 이리 무겁기만한지,
헤어지는 연인마냥 손한번 흔들고는 눈물 찔끔 거려요.

아직은 추운 겨울, 
목도리 꽁꽁, 장갑 질끈, 눈 두개만 뻐끔 내놓고
운동화에 발을 숨겨 슬그머니 문을 여니

지난밤 통통거리던 비님은 어디가고
햐얀 안개 둘러싸인 온 마을이 둥둥둥.

호~하면 나도 같이 
문득 가슴이 콩콩콩.

두볼에 촉촉, 
깊게 마시면 맘속까지 적셔오는
어렴풋이 기억나는 그 향기
아아! 
지난 봄소풍때 그 샛노란빛.

어디까지 왔나요? 나의 봄님.
부끄러워 말아요. 이른 봄님.
뽀이얀 그 얼굴을 어서 빨리 보여줘요.


 


4.
지난 밤 질기디 질긴 막창 안주가 아직도 뱃속에서 꿈틀거린다.
주말 특근에 마신 쇳가루 기어코 씻어내자며
꺼먼 얼굴로 나선 삐까한 뒷골목, 
그게 결국은 새벽이었다.

비린 속은 둘째치고 반쯤 감긴 눈은 
찬물로 세수해도 손에 낀 기름때처럼 씻겨 날줄 모른다.

365일 잔업 특근에, 이 인생이 거기서 거기다만
겨울비마저 내린 새벽 출근 시간이면 이 계절이 정말 싫다.
문득, 지난 여름 질펀히 녹아내린 퇴근길 
차라리 겨울을 기다리던 그 쓴 기억에 무심한 담배하나 문다.

위아래 내복에 두껍해진 몸을 겨우 굽혀 안전화 끈을 묶고
통근 버스 시간에 쫏겨 끼익거리는 문을 열고...

 


아!
안개.

 


아!
봄.

 


그래.
겨울, 여름 말고도
봄 이란게 있었구나.

 

 

 

5.

그런 순간이 있습니다.
어느 겨울날, 이른 아침에 습한 안개 너머로 문득 봄내음이 느껴지는 순간.

그런 순간이 있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다 문득 눈을 돌려 마추친
정류장에서 발을 동동구르는 어느 낮선 여학생의 눈빛에서 
첫사랑 그녀의 마지막 슬픈 목소리가 들리는듯한 순간.

그런 순간은 마치 다시 없었던 순간처럼 스쳐갑니다.
시간이 지나면 그런 순간의 느낌이야 먼훗날이나 오래전 이야기처럼 스잔해 갑니다.

그런 순간은 꼭 있습니다.
새벽 출근길 문을 열었던, 새벽 안개가 눈에 들어온 그 한번의 고개듬.
며칠이 지나 이제 그 순간을 밷어내고 있지만 여전히 그 순간은 꼭 이 자리에 있습니다.

꼭 이 자리에 있습니다.
이를 닦다, 세수를 하다, 차가워진 종이컵을 들이키다 
문득문득 돌아오는 순간이 이자리에 있습니다.

이제 몇년인지도 세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세월이지만,
그 한번의 고개 떨굼.
당신은, 항상 그런 순간에 숨어있습니다.

 

 

2010.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