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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5/07 '공평한 사회' 밖에 있는 20대 후반의 나

'공평한 사회' 밖에 있는 20대 후반의 나

Posted 2008/05/07 15:32 by 왼맘잡이

그 빌어먹을 기사 때문에 시작됐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알고 있었던 일이지만 애써 모른척 해왔을 뿐이다.

어제 한 일간지에 ‘신용 문맹국’이라는 기사가 떴다. 기사에서는 나랑 동갑인 한 취업준비생이 학자금 대출 때문에 신용불량 직전까지 갔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순간 잊고 있었던 학자금 대출이 생각났다.
그 일간지에서는 ‘내 신용등급 알기 캠패인’을 벌여 무료로 자기 신용 등급을 조회 할 수 있게 했다. 확인해봤다.
역시나…. 전체 10등급 중에 8등급. 이건 신용불량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건 내 신용등급 관리 따위가 아니다. 문제는 아직 고스란히 남아있을 ‘빚’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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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열심히 살아왔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것은 1999년. IMF 이후 사회도, 우리 집안도 경제 사정은 엉망이었다. 별 고민할 여지도 없이 가까운 지방 국립대에 특차로 지원했다. 수능이 끝난 후 더 이상 학교는 나가지 않았다. 새벽시장에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해 입학금을 마련했다.

그래도 대학생활은 즐기고 싶었다. 대학에서 많은 경험을 하는 것이 남는 것이라는 생각에 가능한 방학때만 막노동을 하거나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학기중에는 다양한 활동을 했다. 대학언론사 활동을 했고, 학과 연구학회를 했고, 동아리를 하며 공연을 했고, 틈틈이 봉사활동과 취업 프로그램에도 참가했다.

8학기 가운데 5학기는 장학금을 받았고, 4학년 때는 학교에 나가지 않고 인턴을 하면서 경력을 쌓고 용돈을 벌었다.
물론 사립대의 절반 밖에 안 되는 등록금이었지만, 대학 생활을 하면서 용돈을 벌고 등록금까지 마련하기는 힘들었다. 장학금 가운데 일부는 대학 언론사 활동 장학금이었기에 현금으로 나왔다. 학기중에는 그걸로 생활비를 충당했다.
결국 대학을 다니는 동안 4번의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처음 한번은 정부에서 지원하는 저금리로 받았지만 두 번째부터는 그것마저 없어져 일반 은행 이자로 받았다.

작년 졸업 후 지금은 한 벤처 회사에 다니고 있다. 남들처럼 졸업 후 시간을 투자해 공무원 준비를 하거나 어학연수를 갈 수는 없었다.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 일하는 곳이 안정되고 이름 있는 회사는 아니지만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라 만족하며 살고 있다. 게다가 직접 투자를 하지는 않았지만 창업 맴버로 내가 만들어가는 일이라는 자부심이 있다. 하지만, 생활비 이상의 돈을 벌지는 못한다. 그래서 벌이가 마땅치 않던 지난해부터 내야 할 돈을 내지 못했다.

핸드폰 번호가 바뀌고 주소가 바뀌면서 연체에 대한 어떤 이야기도 듣지 못했고, 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자면 알고 있었지만 어차피 감당 할 수 없어 모른척 해왔다.

더 이상 모른척 할 수 없었다. 그 빌어먹을 기사는 봤기 때문에….
학자금을 대출한 은행에 전화를 했다. 기록이 없단다. 다시 물어봤다. 기록이 넘어갔단다. 6개월 이상 장기 연체 되면서 보증기관으로 넘어갔단다.
그럴 리가 없었다. 대출 신청할 때 충분히 장기로 했고 대부분은 아직 원금 상환은 시작도 안됐을 터다. 자세히 물어봤다. 원금 상환전에 약간의 이자만 내는 거취기간 동안의 이자가 연체되면서 전액이 통째로 넘어갔단다. 몇십만원이 문제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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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은행이 아니라 학자금 대출 보증을 했던 한국주택금융공사와 한 보증보험 기관과의 문제가 됐다. 일일이 전화를 해서 지금 상태를 알아봤다.
대출금은 학교를 다니면서 일부는 갚았기에 800여만원이 남아있었다. 한국주택금융공사에서는 대출시 보험에 보증되지 않았던 부분에 대한 초입금 130만원을 입금하고 매달 15만원 정도 분할 상환이 가능하단다. 보증 외 부분에 대해서는 연17%, 보증금에 대해서는 연 9%의 이율이 붙고 있다.

담장자에게 지금 상황을 설명하고 구제나 연기 할 수 있는 방안을 물어봤다. ‘빌렸으니 당연히 제때 갚았어야 하는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누가 그걸 모르나? ‘정부 보증’이라는게 이런 것이었다. 나는 죄인이다. 계속 상태가 지속될 경우 가압류에 들어갈 수 있단다. 다행히 나와 내 가족에게는 가져갈 것이 없다.

민간보증보험사에도 연락했다. 여기는 훨씬 더 험악했다. 사정 설명을 했더니 버럭 화를 낸다. 분납도 어렵고 한번에 내야 된단다. 다음달 정도 소송에 들어간다고 한다. 급여가 확인되면 차압 될 거란다. 다행히 지금 나에게는 월급이란게 없다.

내 신용 상태는 이미 말로만 듣던 ‘신용불량’이다. 예금거래를 제외한 모든 금융 거래가 제한됐다. 취업이나 집을 구하는 일 등에도 불이익이 있다. 다행히 나는 고시원에 산다.

그 빌어먹을 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신용등급이 낮을수록 보험료도 비싸지고 자동차 할부 이자나 은행 이자도 높다. 휴대폰 개통 때나 아파트를 임대할 때 내야할 보증금이 더 많다. 전기나 가스 사용 단가도 더 비싸질 수 있다. 기사는 이것이 공평한 것이란다. 후훗.. 개새끼들..

내가 지은 죄는 남들 다가는 대학을 간 것이다.
그리고 이 형편에 대학 다닐 때 다 포기하고 돈만 벌지 않고 여러 가지 활동을 한 것이다.
취업 경쟁에서 최고상위층에 있는 대기업 취업이나 공무원이 되지 못하고 어리석게 아직도 꿈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이다.
바보같이 정부 시책이었던 학자금 대출을 과다 복용한 것이다.
그리고 그 빌어먹을 기사를 읽게 된 것이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문제를 알고 있었으면서도 ‘어쩔 수 없었기에’ 모른 척 해왔다는 것이다.

그 빌어먹은 기사는 공평한 사회를 말했다. 우습게도 난 그 공평한 게임에 참가할 자격이 부족했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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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바 해도 생활비만 겨우 버는 대딩들.

    Tracked from Lefinion Post 2008/05/08 15:56 Delete

    “‘고품질’로 판정 받은 사람들이 알바를 할 수 있죠.”<?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2006년 겨울부터 시작한 이래로 이번이 네 번째에요. 한 번 할 때마다 28만원에서 최고 55만원까지 받는데, 무슨 실험이냐에 따라 받는 돈이 달라지죠.” 가람씨(26)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생동성 실험 알바”를 한다. 등록금은 어떻게 할 수 없어도 학기..

  2. 대학생을 위한 러브하우스가 필요해!

    Tracked from Lefinion Post 2008/05/08 15:57 Delete

    대학생을 위한 러브하우스가 필요해! 대학을 다니면 이래저래 부담스러운 일이 많아진다. 하루 3~4시간을 지하철·버스에서 허비해야하는 ‘정통통학파’들도, 선택받은 기숙사학생, 비교적 자유로운 ‘자취·하숙연대’까지. 이들이 목말라 하는 것은 ‘학교와 가깝고 돈도 별로 안 드는 저렴한 공간에서 공부에 전념하고 싶다’ 이 한 가지 생각. 그런데 현실은 냉혹하기만 하다. 서울 같은 경우 몇몇 대학가를 중심으로 ‘재개발’을 이유로 집값이 오르기 시작하더니 정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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