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경찰? 나쁜경찰? 두 얼굴을 경찰을 만나다.

Posted 2008/06/18 03:48 by 왼맘잡이
벌써 며칠전 이야기가 되어 버렸네요. MB만큼은 아니지만 이 빌어먹을 '귀차니즘'과 '일의압박' 덕에 옛 이야기를 써야 하는 마음이 쓰립니다. ㅜ,ㅡ

오늘은 지난 주말에 만난 경찰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초큼 칭찬도 있어요. 사실 전 하는 일의 특성상 맨날 경찰 까는 이야기만 했는데...
얼마전 시위대 바지가 벗겨지면서 경찰차에서 떨어지는 동영상(http://www.lpost.net/306)을 올린후에는 경찰청에서 직접 해명자료까지 내놓았더군요.

아무튼 이날도 광화문에 갔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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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엔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 명박산성은 없고 닭장차벽과 폴리스라인이 있더군요.
게다가 전경이 아니라 '무궁화 꽃봉우리' 여러장을 단 '아저씨'들이 직접 앞에 나와 있더라구요. 아마도 며칠전 경찰 최고 비상령인 '갑호비상령' 상황에서 당구치던 경찰 간부들에 대한  기사가 민중의소리에 보도(http://www.vop.co.kr/A00000210218.html)되고 위에서 직접 나가라고 했나보죠.

경찰들도 사실 무서웠을꺼에요. 전경들이야 방패에 헬맷에 완전 무장을 하고 나오지만 그들은 그냥 맨몸으로 나왔으니까요. 하지만 '폭력시위'에 대한 자성을 끝낸 시민들은 오히려 경찰들을 위로하면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어요.
경찰과 이야기 하던 한 아저씨는 "저 옆에 경찰은 심적으로는 동의하는데 어쩔 수 없이 나온거라고 이야기 했다"고 하더군요.

그치만 저들이 왜 광화문 거리를 막고 시민들을 앞을 막고 있어야 하나 생각해보니 씁쓸한 마음이었어요. 게다가 지금도 새벽녁이되면 사람들을 연행하고 안보이는데서 폭력을 쓰기도 하니까요. 사실 5월 말과 6월 초에 새벽 광화문 거리는 정말 피의 거리라 할만큼 참혹했으니까요.
폭력을 행하는 전의경들도 다 동생같은 아이들인걸 생각하면 참 가슴이 아프죠.



아무튼 이날에도 시청광장에서 홍세화 선생님이 함께하는 '광장토론'을 보다 버스 시간을 놓쳐버렸지 머에요. 그러다 친구를 데려다 주고 종각역에 갔는데 구로 가는 막차가 지나가길래 일단 탔습니다. 제가 사는 곳은 숭실대 부근인데 일단 노량진까지만 가보자는 생각이었죠.

노량진역에서 내리니 시간은 12시 30분을 넘겼더군요. 혹시나 싶어 버스 정류장에 앉아 있었습니다. 제가 가는 방향과는 다른쪽으로 가는 500번 버스가 지나가더군요. 아마 막차였나봅니다.
그리고 몇분 후 너무너무 꼬부랑해져서 제 허리까지도 안오는 할머니 두분이 정류장으로 왔어요. 그리고는 버스가 있냐고 물어보더라구요.

막차가 지나간 것 같다고 하니 그 쭈글쭈글한 얼굴로 한숨을 쉬시면서 걱정을 했어요. 워낙 눈에 뛸 정도로 안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어 동네 아주머니 몇분이 이것저것 물어보더라구요.
신림동 근처에 살고, 근처 교회에 왔었다는것 같더군요. 그런데 교회는 이미 문이 잠겼고, 차비고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답니다.
아주머니들도 걱정스러운 수다만 늘어놀뿐이었죠.

전 어차피 차도 끊긴것 같고해서 지켜보고 있다 문득 '112'가 생각났어요. 그래서 혹시하하는 마음에 전화를 했고 곧 경찰차가 왔습니다. 신림동까지 간다고 하니 경찰 아저씨 두분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시더군요. 아마 관할 구역 밖으로 경찰차가 나가기가 쉽지 않나 보더라구요.
여차저차 해서 결국 경찰 아저씨들은 할머니를 데러다 주기로 하고 차에 태워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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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http://blog.daum.net/rstars14

전 택시비도 없고해서 5정거장 정도 되는 집으로 걸어가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낮에 본 경찰과 시민, 예전 집회에서 방패를 휘두르는 전의경들과 피흘리던 여학생의 눈동자.
몇해전 여의도 농민 집회에서 경찰폭력에 돌아가신 세분의 할아버지들.

그리고 그날 집회에서 누군가가 말한 이야기도 떠올랐어요. 전의경제도는 간첩을 잡기 위해 만들었는데 그 규정에 '민생치안지원(?)' 이라는 문구 하나 때문에 지금 전의경들이 집회 막는데 동원되고 있다는 사실.

음.. 그러고 보니 어제 신촌에서 본 전경도 생각나는군요. 얼마전 전경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행정심판을 청구한 그 전경 말이죠. 그는 사실 이번 촛불 집회도 문제가 있지만 소위 경찰 '시다바리'를 하는 전경 제도 자체에 대해 많은 반대를 했답니다.

여튼.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폭력경찰도, 오늘 할머니들을 데려다 주신 동네 경찰 아저씨도 같은 경찰이죠.

한쪽은 우리의 친구며 도우미같고, 다른 한쪽은 권력과 부정을 지키는 존재며 시민을 아프게 하는 존재로 보여지죠.
특히 한창 젊은 후배들이 (사실 저도 아직 예비군인데 ㅎㅎ) 그런 일에 동원되고 있다는 건 너무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전쟁때 서로 총을 겨누던 민족의 슬픈 역사가 다시 떠오르기도 하구요.

아닐겁니다.
나쁜건 그 청년들이 아니죠.
이런 상황을 만든 '어청수' 같은 몇몇이겠죠.
당신들은 경찰이 아닙니다. 제가 아는 경찰은 착한 사람들이에요.

세상에 착한 경찰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기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뭘까요?

Tag : 경찰, 전의경, 전의경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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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준택

    | 2008/06/18 06:41 | PERMALINK | EDIT | REPLY |

    훈훈한 내용입니다.

    경찰과 국민의 불신이 커지는 것 같아 참 걱정입니다...

    누가 이렇게

    만드는지.. 어집사와 맹박이는 참.. 나쁜 사람들입니다.

  2. 비폭력

    | 2008/06/18 08:05 | PERMALINK | EDIT | REPLY |

    그러게요...
    시위대도 나쁜폭력시위대만 있는건 아닐거라고 믿습니다.
    착한시위대도 있을꺼에요.

    물론 시위내용과 관계없이 성추행하려고, 혹은 노숙자들이 밥먹으려고 하는수없이 나온사람도 많지만서도..

    암튼 나쁜건 그 시위대청년들이 아니겠죠
    일부 폭력시위대와 폭력을 주동하는 선동세력이겠죠.
    지금 문제가 되고있는 폭력시위대가 전부는 아닐꺼에요~

  3. LIVey

    | 2008/06/21 03:35 | PERMALINK | EDIT | REPLY |

    정말로 나쁜 건 윗대가리라는걸 알아야죠ㅠ;;;
    하지만 사람이 많은 단체라면 이상한 사람은 있기 마련이죠... 경찰도 그런거죠;;;

  4. ラナ

    | 2008/06/24 21:40 | PERMALINK | EDIT | REPLY |

    아...
    저 논산가는데....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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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다음 다음 날....

Posted 2008/06/14 04:38 by 왼맘잡이

토요일 새벽입니다.
다행히 모니터 앞에 놓인 소주병과 피클 조각이 부끄럽지 않을 만큼 아직은 어둡습니다.

사실은 좀 그래요.
여긴 왠지 제 생활이 닫지 않는 진공의 공간으로 두고 싶었어요.
하지만 어찌어찌 하다보니 쥔장이 누군지도 어설프게 알려지더군요.

사실 그 이야기가 하고 싶은 건 아니에요.
새벽 네시.  지금 저에겐 담배가 없어요. 가장 필요한건 그건데 말이죠.
안주도 없어요.
그래도 나쁘진 않아요. 소주는 있으니까요.
냉장고를 뒤지니 조그만 피클 컵이 있네요.

그래요. 
모니터와 소주병 사이에서 흐느적거리다 어느새 마우스가 미니홈피를 열어놨더군요.
네이트온은 막았는데 미니홈피는 잘 안되더라구요.
오늘의 '김유신의 말'은 마우스일까요? 아님 제 손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아직 남아있는 마음일까요?
하지만 그게 제 손이나 마음이라면 김유신처럼 잘라 버릴수도 없잖아요.

맞아요.
싸이월드엔 그녀의 흔적이 너무 많아요.
그럴 수 밖에요. 전부였으니...
어쩔 수 없이 주저리주저리 끄적이고,,,
감정을 이기는 만큼 지울건 지우고...

그래도 너무 힘들면 소주 한잔 들이키고, 시디 신 피클 한조각 깨물고...

도망치듯 블로그로 왔어요.
아직 잘 수 있을 것 같진 않았거든요.

그런데 있죠.
여기도 있었어요. 어떻게 여기까지 뚫고 왔을까요?

이건지금이야기와조금상관없는거긴한데몇일전에생각했던건데빛이란놈이입자일까진동일까아님다른무엇일까하는고민을했더든요우주의빈공간을지나치는수많은것을이분명이있을텐데걔네들의정체는무엇일까하는...사실결론은안났지만지구와별사이에있는빈공간이결코빈것만은아닐거라는생각을했었죠.

그런걸까요?
제 모든 흔적에 그녀가 채워지지 않은 곳은 없나봐요.
그래서 하나씩 지우다지우다 또 들이키고 깨물고, 다시 끄적이게 되네요.

제 생각 속에서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몇가지가 있는데요.
시간, 공간, 시작, 끝, 옮음, 나쁨... 뭐 이런 것들이에요.

재밋는 건 이 녀석들은 서로서로 헷갈리게 하면서도 서로서로의 답을 주거든요.

공간의 짝은 시작이라는 놈인거 같다는 생각이 오늘 문득 들었어요.

지금 그녀가 가득차 있는 모든 공간을 채울 수 있는 건,
입자도 파동도 아닌...  시간..

음..  그래서..
그 자릴 지우거나 뭔가를 채우려 하지 않기로 했어요.

훗...

하지만 잘 모르겠어요.

어떻게 할 수 있을지...  혹은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잘 모르겠어요.

다만, 당분간 술은 좀 많이 먹을 것 같아요.



그리고, 좀 걷고 싶네요.

서울을 떠나서...
그냥 말 없이......

하루든 일주일이든.....










Tag : 그래요 저 이제 솔로에요, 그치만 괜찮아요, 누구나 다 그런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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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ラナ

    | 2008/06/24 21:42 | PERMALINK | EDIT | REPLY |

    시간이 지나다보면...
    새로운 추억이 쌓여서
    그녀와의 추억이
    님 머릿속에 어느 한편으로 있을거예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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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가슴팍이 아프다...

Posted 2008/06/02 02:28 by 왼맘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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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가슴팍이 쓰리다...

어제 전경 바로 앞에서 밀어붙히다 순간적으로 전경들 사이에 끼어 가슴을 짓눌렸던 탓에...
물대포에 온몸이 젖고, 뛰어다니다 마르고, 또 젖고 마르고 그렇게 아침을 맞이한 탓에....

때아닌 감기에 쓴 기침을 뱃어낼때마다 왼쪽 가슴팍이 아린다.


하지만..

그보다...

아닌것을 아니라고 말하는 시민들에게 폭력을 들이대는 저들과...
저들이 무슨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정치권, 경찰, 불쌍한 전경들...

사람으로서, 언론인으로서, 최소한의 양심조차 따르지 않는 저 언론들과 그 속에서 자괴감에 빠져있을 기자들...
시위대에 참여해 고작 기사 나부랭이, 동영상이나 올리고 있는 나 자신에...

왼쪽 가슴이 부글부글 시려온다.

그래도 아직 내 왼쪽 가슴에는 저들이 없는 무언가가 뛰고 있나보다.

다행이다.



민중의 노래 - 꽃다지

어둠에 찬 반도의 땅 피에 젖은 싸움터에

민중의 해방위해 너와 나 한목숨 바쳐

노동자도 농민들도 빼앗긴 자 그누구도

투쟁의 전선으로 나서라 깃발 힘차게

독재정권의 저 폭력에 맞서 외세의 수탈에 맞서

역사의 다짐속에 외치나니 해방이여

보아라 힘차게 진군하는 신새벽에

승리의 깃발 춤춘다 몰아쳐라 민중이여


10년도 더 지난 노래인데...

어찌 이 쓰라린 역사는 다시 반복되는가...


덧. 검색으로 들어오신 분이 많네요.
제가 찍은 동영상은 팀블로그인 www.lpost.net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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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asto

    | 2008/06/06 23:20 | PERMALINK | EDIT | REPLY |

    우린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주권을 가진 한 사람인데...

    말 한마디 하는데 맘졸이고 살아야 되는 이 놈의 현실.

    이번에 이 빌어먹을 프레임이 반드시 깨질 바랍니다!

  2. LIVey

    | 2008/06/07 22:48 | PERMALINK | EDIT | REPLY |

    저는 진압할때까지 있어보질 않아서ㅠㅠ
    왠지 미안해지네요ㅠ

  3. 제주 소년

    | 2008/06/12 19:13 | PERMALINK | EDIT | REPLY |

    왼쪽 가슴이군요.
    님의 오른쪽 가슴마저도 아프면 안되는데.
    하루 빨리 왼쪽 가슴의 응어리가 풀려야죠ㅎ
    몸은 피곤하지만, 영혼은 편안할 수 있는 그 날이 오길.

  4. freesopher

    | 2008/06/13 02:48 | PERMALINK | EDIT | REPLY |

    오랜만에 듣는 민중의 노래군요. 예전엔 늘 길바닥에 앉아서 불렀다죠. 음냐... 벌써 6년전인가.. 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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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평한 사회' 밖에 있는 20대 후반의 나

Posted 2008/05/07 15:32 by 왼맘잡이

그 빌어먹을 기사 때문에 시작됐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알고 있었던 일이지만 애써 모른척 해왔을 뿐이다.

어제 한 일간지에 ‘신용 문맹국’이라는 기사가 떴다. 기사에서는 나랑 동갑인 한 취업준비생이 학자금 대출 때문에 신용불량 직전까지 갔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순간 잊고 있었던 학자금 대출이 생각났다.
그 일간지에서는 ‘내 신용등급 알기 캠패인’을 벌여 무료로 자기 신용 등급을 조회 할 수 있게 했다. 확인해봤다.
역시나…. 전체 10등급 중에 8등급. 이건 신용불량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건 내 신용등급 관리 따위가 아니다. 문제는 아직 고스란히 남아있을 ‘빚’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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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열심히 살아왔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것은 1999년. IMF 이후 사회도, 우리 집안도 경제 사정은 엉망이었다. 별 고민할 여지도 없이 가까운 지방 국립대에 특차로 지원했다. 수능이 끝난 후 더 이상 학교는 나가지 않았다. 새벽시장에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해 입학금을 마련했다.

그래도 대학생활은 즐기고 싶었다. 대학에서 많은 경험을 하는 것이 남는 것이라는 생각에 가능한 방학때만 막노동을 하거나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학기중에는 다양한 활동을 했다. 대학언론사 활동을 했고, 학과 연구학회를 했고, 동아리를 하며 공연을 했고, 틈틈이 봉사활동과 취업 프로그램에도 참가했다.

8학기 가운데 5학기는 장학금을 받았고, 4학년 때는 학교에 나가지 않고 인턴을 하면서 경력을 쌓고 용돈을 벌었다.
물론 사립대의 절반 밖에 안 되는 등록금이었지만, 대학 생활을 하면서 용돈을 벌고 등록금까지 마련하기는 힘들었다. 장학금 가운데 일부는 대학 언론사 활동 장학금이었기에 현금으로 나왔다. 학기중에는 그걸로 생활비를 충당했다.
결국 대학을 다니는 동안 4번의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처음 한번은 정부에서 지원하는 저금리로 받았지만 두 번째부터는 그것마저 없어져 일반 은행 이자로 받았다.

작년 졸업 후 지금은 한 벤처 회사에 다니고 있다. 남들처럼 졸업 후 시간을 투자해 공무원 준비를 하거나 어학연수를 갈 수는 없었다.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 일하는 곳이 안정되고 이름 있는 회사는 아니지만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라 만족하며 살고 있다. 게다가 직접 투자를 하지는 않았지만 창업 맴버로 내가 만들어가는 일이라는 자부심이 있다. 하지만, 생활비 이상의 돈을 벌지는 못한다. 그래서 벌이가 마땅치 않던 지난해부터 내야 할 돈을 내지 못했다.

핸드폰 번호가 바뀌고 주소가 바뀌면서 연체에 대한 어떤 이야기도 듣지 못했고, 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자면 알고 있었지만 어차피 감당 할 수 없어 모른척 해왔다.

더 이상 모른척 할 수 없었다. 그 빌어먹을 기사는 봤기 때문에….
학자금을 대출한 은행에 전화를 했다. 기록이 없단다. 다시 물어봤다. 기록이 넘어갔단다. 6개월 이상 장기 연체 되면서 보증기관으로 넘어갔단다.
그럴 리가 없었다. 대출 신청할 때 충분히 장기로 했고 대부분은 아직 원금 상환은 시작도 안됐을 터다. 자세히 물어봤다. 원금 상환전에 약간의 이자만 내는 거취기간 동안의 이자가 연체되면서 전액이 통째로 넘어갔단다. 몇십만원이 문제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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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은행이 아니라 학자금 대출 보증을 했던 한국주택금융공사와 한 보증보험 기관과의 문제가 됐다. 일일이 전화를 해서 지금 상태를 알아봤다.
대출금은 학교를 다니면서 일부는 갚았기에 800여만원이 남아있었다. 한국주택금융공사에서는 대출시 보험에 보증되지 않았던 부분에 대한 초입금 130만원을 입금하고 매달 15만원 정도 분할 상환이 가능하단다. 보증 외 부분에 대해서는 연17%, 보증금에 대해서는 연 9%의 이율이 붙고 있다.

담장자에게 지금 상황을 설명하고 구제나 연기 할 수 있는 방안을 물어봤다. ‘빌렸으니 당연히 제때 갚았어야 하는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누가 그걸 모르나? ‘정부 보증’이라는게 이런 것이었다. 나는 죄인이다. 계속 상태가 지속될 경우 가압류에 들어갈 수 있단다. 다행히 나와 내 가족에게는 가져갈 것이 없다.

민간보증보험사에도 연락했다. 여기는 훨씬 더 험악했다. 사정 설명을 했더니 버럭 화를 낸다. 분납도 어렵고 한번에 내야 된단다. 다음달 정도 소송에 들어간다고 한다. 급여가 확인되면 차압 될 거란다. 다행히 지금 나에게는 월급이란게 없다.

내 신용 상태는 이미 말로만 듣던 ‘신용불량’이다. 예금거래를 제외한 모든 금융 거래가 제한됐다. 취업이나 집을 구하는 일 등에도 불이익이 있다. 다행히 나는 고시원에 산다.

그 빌어먹을 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신용등급이 낮을수록 보험료도 비싸지고 자동차 할부 이자나 은행 이자도 높다. 휴대폰 개통 때나 아파트를 임대할 때 내야할 보증금이 더 많다. 전기나 가스 사용 단가도 더 비싸질 수 있다. 기사는 이것이 공평한 것이란다. 후훗.. 개새끼들..

내가 지은 죄는 남들 다가는 대학을 간 것이다.
그리고 이 형편에 대학 다닐 때 다 포기하고 돈만 벌지 않고 여러 가지 활동을 한 것이다.
취업 경쟁에서 최고상위층에 있는 대기업 취업이나 공무원이 되지 못하고 어리석게 아직도 꿈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이다.
바보같이 정부 시책이었던 학자금 대출을 과다 복용한 것이다.
그리고 그 빌어먹을 기사를 읽게 된 것이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문제를 알고 있었으면서도 ‘어쩔 수 없었기에’ 모른 척 해왔다는 것이다.

그 빌어먹은 기사는 공평한 사회를 말했다. 우습게도 난 그 공평한 게임에 참가할 자격이 부족했었나보다.

Tag : 대학졸업생, 신용불량자, 학자금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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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바 해도 생활비만 겨우 버는 대딩들.

    Tracked from Lefinion Post 2008/05/08 15:56 Delete

    “‘고품질’로 판정 받은 사람들이 알바를 할 수 있죠.”<?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2006년 겨울부터 시작한 이래로 이번이 네 번째에요. 한 번 할 때마다 28만원에서 최고 55만원까지 받는데, 무슨 실험이냐에 따라 받는 돈이 달라지죠.” 가람씨(26)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생동성 실험 알바”를 한다. 등록금은 어떻게 할 수 없어도 학기..

  2. 대학생을 위한 러브하우스가 필요해!

    Tracked from Lefinion Post 2008/05/08 15:57 Delete

    대학생을 위한 러브하우스가 필요해! 대학을 다니면 이래저래 부담스러운 일이 많아진다. 하루 3~4시간을 지하철·버스에서 허비해야하는 ‘정통통학파’들도, 선택받은 기숙사학생, 비교적 자유로운 ‘자취·하숙연대’까지. 이들이 목말라 하는 것은 ‘학교와 가깝고 돈도 별로 안 드는 저렴한 공간에서 공부에 전념하고 싶다’ 이 한 가지 생각. 그런데 현실은 냉혹하기만 하다. 서울 같은 경우 몇몇 대학가를 중심으로 ‘재개발’을 이유로 집값이 오르기 시작하더니 정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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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4월 19일입니다.

Posted 2008/04/19 17:12 by 왼맘잡이

오늘은 토요일입니다.
또한 무척이나 깊은 향의 봄날입니다.

4월 19일입니다.
제가 태어나기도 훨씬 훨씬 전 민주화를 외치던 시민들이 '대한민국'의 손에 의해 피를 흘리고 쓰러져 간 날입니다.

사실 우리 세대에는 와닿지 않는 일입니다.
3.1운동과 6.25, 3.15, 4.19, 5.18, 6월항쟁.
모두 숫자 또는 날짜로만 인식되는 과거의 '어느 날'입니다.

많은 대학에서 그렇듯이 저도 예전에는 이날 4.19마라톤을 뛰었습니다.
다른 대학생들도 젊은이들도 다만 그것뿐이었습니다.

제 고향은 마산입니다. 3.15 의거가 발생한 곳이죠. 덕분에 저는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더 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관심을 가진 것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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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에 있는 3.15 기념탑입니다. -출처 경남도민일보
 ♣ 비문 내용 
  
저마다 뜨거운 가슴으로 민주의 깃발을 올리던 그날 1960년 3월 15일!
   더러는 독재의 총알에 꽃 이슬이 되고 더러는 불구의 몸이 되었으나 우리들은
   다하여 싸웠고 또한 싸워서 이겼다.
    보라 우리 모두 손잡고 외치던 의거의 거리에 우뚝 솟은 마산의 얼을,
   이 고장 3월에 빛발친 자유와 민권의 존엄이 여기 영글었도다.
   
                           1962년   7월   10일
                        마산 3.15의거 기념사업 측성회    


아시다시피 4.19혁명은 3.15의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날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에 대항해 마산시민들이 315의거를 벌였습니다.

그리고 그날 수많은 사람들의 피로 마산이 물들었습니다.
다시 20일이 지난 후 마산 앞바다에 한 소년의 참혹한 시체가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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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김주열 열사였습니다.
고향이 전라도였던 중학생 김주열 열사는 당시 마산고등학교에 입학 시험을 위해 마산에 갔었다고 합니다.
마산고등학교는 제 모교입니다.
하지만 저는 학교 다니면서 이런 이야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몇몇 좋은 선생님을 만난 운이 좋은 학생들을 제외하고 중고등학교에서는 이런 한국현대사에 대해 가능한한 가르치지 않는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아마 이런 것들을 가르치려고 노력하는 선생님들은 '전교조'에 소속되어 있고, 그 역시 쉽지 않은 길을 가고 있을 것입니다.

김주열 열사의 시체가 바로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됩니다.
결과는 민중의 승리였지요. 물론 오래가진 못했지만...

아마 김주열 열사가 그때 그렇게 죽지 않았다면 저에게는 고등학교 선배로 남았겠지요.
물론 그랬다면 저도, 제 친구들도 그분을 모른체 살았을 가능성이 높지만요.

자신이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그 분은 우리 학교의 자랑입니다.
학교에서 이런걸 가르치지 않았던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요.

그의 죽음은, 이후에도 민주화 운동에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겁니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도 마음속에 그를 품고 사는 사람들이 많겠지요.


목숨으로 기억에 남는 사람들은 더 있습니다.
유관순 열사, 전태일 열사, 이한열 열사...
왜 이들의 이름 뒤에 열사라는 슬픈 수식어가 붙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이 죽어야 했던 이유는 그 자신에게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죽였던 것은 어리석은 지도자들이었지요.

그리고....
그들은 모두....

지금의 저보다, 이 글을 읽을 당신보다 어린 나이였을 겁니다.


무척이나 짙은 봄날입니다.

김주열, 전태일, 이한열, 유관순 열사가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봄날을 느꼈을까요?
그들이 두고 간 세상에서 우리는 이 봄날을 그냥... 하루하루의 날짜로 흘러보내고 있습니다.


내가 그냥 흘러보내는 오늘 하루가...
어제 그들이 그토록 살고 싶었던 오늘이었음을...


오늘도 더 열심히 살아야겠습니다.

Tag : 3.15, 315, 4.19, 4.19 혁명, 419, 김주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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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이슨소울

    | 2008/04/22 09:31 | PERMALINK | EDIT | REPLY |

    느껴지는게 많은 글입니다....
    저 개인의 아픔도 아픔이지만,
    더 힘을 내야겠군요!!

  2. 나놔

    | 2008/04/22 10:11 | PERMALINK | EDIT | REPLY |

    저 사진은 처음 보는 사진인데... 휴.ㅠ

  3. 후여리

    | 2008/04/23 21:34 | PERMALINK | EDIT | REPLY |

    한해 한해 지나면서.. 세대가 바뀌고 하면서..
    점점 잊혀지는건 아닐련지 걱정이네요..
    저두 20대 후반인데..
    아주 어릴때 근처에 대학교가 있어서..
    대학생들 시위하고 전경들은 최루탄 쏘고.. 했었던 광경을..
    봤었는데.. 어릴때라서.. 왜그랬지는 모르겠지만..
    요즘은 취업이 더 큰 전쟁이라는거 같아요..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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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중후반, 이 나이 때 가장 큰 고민은 누가 뭐래도 취업이다. 특히 대학 졸업을 앞둔 4학년(또는 5학년 이상)들과 갖 졸업한 이들은 이제 새로운 신분인 ‘취업준비생’이라는 계급을 형성하고 있다.

봄이 한창인 4월 중순의 어느 날, 신흥 세력인 ‘취업준비생’에 어쩔 수 없이 포함돼버린 두명과 홍대 부근 한 바에서 가볍거나 혹은 무거운 수다를 나눴다.

J양은 모여대 경영학과 4학년 휴학중이다.

J양-저는 12월에 자격증 시험이 있어서 그거랑 토익 준비하고 있어요.

토익학원을 다니는데 휴학생들이 너무 많아요. 거기에만 올인하는 것 같아요. 학원에서 숙제도 엄청 많이 내주고, 다시 고등학생이 된거 같은 느낌이에요. 원래 대학생들은 시험 기간 아니면 그렇게까지 열심히 안 하잖아요? 요즘은 새벽 세시까지 숙제하고 그래요.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하니까….

L군은 소위 SKY 대학 재료공학과 5학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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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군- 전 사실 처음으로 이력서 넣어놨는데 오늘이 발표예요. 지금쯤 아마 1차 합격자 공지가 올라왔을지도 모르겠네요.

음…. 저는 원래 ‘나는 방송인이 될꺼야’라고 생각했었죠. 대학 지원할 때도 거의 신문방송학과 지원했고, 딱 한군데 지금 이 과에 지원했는데 신방과는 다 떨어져서 공대로 왔죠. 1, 2학년 때는 다시 꿈을 키워보려고 했었는데 계속 하다보니 이게 쉬운일이 아니구나 싶어서 지금은 거의 포기한 상태죠.

원래는 아나운서가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방송관련 동아리도 했죠.
지금은 조금 머릿속이 복잡한게 과 연구실에서 학부연구생 생활을 하고 있거든요. 대학원에 들어갈까 해서 하는데, 집에서는 취업 하라고 하고….

J양-저는 대학 올때 수능점수 맞춰서, 그나마 취업도 잘된다고 해서 경영학과 왔거든요. 그런데 처음에는 학과에 별 관심이 없었어요. 그러다 3학년이 됐는데 해놓은 것도 없고 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죠. 그때부터 학과 공부도 열심히 하고, 공모전이나 인턴 정보도 찾아보고 봉사활동, 동아리도 하고 여러 가지 활동을 많이 했어요. 그때는 활동 중심으로 하다 보니, 토익이나 자격증 준비를 못해서 지금은 이걸 준비하고 있죠.

선배들 말로는 제가 지원하는 금융쪽에는 토익 점수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하더라구요. 저도 그런건 아는데 지금은 금융쪽을 지원하지만 나중에 취업 준비하다 떨어지면 다른 쪽도 지원 할 수도 있는 거고, 혹시나 걱정되는 마음에서….

L군- 제 친구는 대학 다니다가 영화 감독이 하고 싶다고, 집안 반대를 무릅쓰고 이번에 방송연예과로 다시 들어갔어요. 그런데 가보니까 배우는 것도 자기랑 안 맞고 기술적인 건 아카데미 같은데 가서 배울 수도 있고 해서 들어가자마자 휴학 했데요.
근데, 진짜 충격인게 지금 뭐하냐면 토익 준비한데요. 그래서 영화계에서도 토익 보냐고 물어보니까 거기서는 그런거 안 보는데 가만히 있기 불안하니까 하는거에요. 정말 이젠 토익이 보험이 돼버렸어요.

J양- 요즘은 취업하려면 토익 말고도 필요한게 너무 많은거 같아요. 전공 자격증에 동아리, 인턴, 공모전, 또 어학연수도 많이 다녀오잖아요. 여기 플러스해서 사회봉사 경험 있으면 퍼팩트죠. 물론 외모는 베이스고.

아! 그리고 얼마 전에 좋은데 취직한 선배를 만났는데 어떻게 합격했냐고 물어보니까 독특한 경험이 플러스 된거 같다고 하더라구요. 그 선배가 수산시장에서 일한적도 있고, 여행 가이드도 했었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대학생들 사이에도 튀어야 산다는 인식이 있어서 특이한 걸 찾아 하는 것도 있어요. 그래서 저도 고민이에요. 마라톤이라도 뛰어야 하나…. 개그맨 시험을 볼까요?

정말 목적과 수단이 바뀐거 같아요. 너무 이상하지 않아요? 면접 때 할 말을 늘리기 위해 뭔가 하고, 경력을 위해 돈 안 벌어도 되는데 아르바이트 하고...

그런걸 어렸을 때부터 생각하는 거에요. 그러면 인생이 너무 아깝지 않을까요?

정말 취업 걱정이 없다면 하고 싶은게 많은데…. 취미생활도 하고, 전공공부도 더 열심히 하고, 대학생때 할 수 있는 그런걸 더 하고 싶어요. 배낭여행이라든가 해외봉사 같이 젊음을 누릴 수 있는 걸 순수한 마음으로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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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군-저는 매일 아침 연구실 나가고 평일에는 학원 강사 알바를 하고 있어요. 중학생들한테 과학을 가르치는데, 대학생활 하면서 이것저것 통틀어 제일 행복한 기간이에요.

수업하다보면 얘들 떠들고 하면 화도 나지만 아이들하고 있는게 스트레스가 쌓이는게 아니라 스트레스가 풀려요. 이러다보니 걱정되는게 내가 전공 살리면 원치 않는 직장 생활을 할게 뻔한데 그러다 취업해서 적응 못하면 다시 학원 강사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문제는 또 주위 이목이죠.

그 대학 나와서 그거 하고 있냐…. 스타급 강사가 아니면 돈도 많이 못 벌잖아요.

J양- 맞아요. 내 만족보다는 다른 사람 만족 때문에 취업에 스트레스가 더 되요. 친척들끼리 모이면 누구는 어디 들어갔다 더라…. 완전 보여주기 위한 취업이야.

고3때는 이것만 참아내면 대학가서 행복할거라고 했고, 지금도 이걸 참고 취업하면 행복 할거야…. 그런데 그것도 아니고 이제 참는거에 익숙해지는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아까 한 말이 맞아요. 대학생활하면서 즐겼던 일들이 분명히 취업에 도움이 되는데 지금은 그걸 반대로 생각하고 있잖아요? 얼마 전 1학년들과 술을 먹는데 얘들 질문이 ‘스펙은 어떻게 올려요? 이런 경험이 될까요?’ 이런거 였어요. 사실은 그게 아니라 내가 즐겁게, 열성적으로 했던 일들이니까 면접에서도 도움이 되는 건데...

L군-네. 그게 종이한장 차이인데 원래는 내가 즐기려고 하다 보니 그게 도움이 되야 되는데 요즘은 취업을 위해서 내가 이런걸 해야겠다고 하니….

J양-그럼요. 대학생들은 인생을 좀 더 즐길 필요가 있어요. 그래서 결론은?

L군-결론은 즐겨라!

그러나 우리는 토익 공부하러 간다!

Tag : 20대, 공모전, 대학생, 아이러니, 인턴, 취업, 토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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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이슨소울

    | 2008/04/15 10:33 | PERMALINK | EDIT | REPLY |

    여러모로 저의 주변 친구들 얘기를 보는 것 같습니다......
    저는 항상 친구들한테 '그냥 즐겨!' 라고 말하는데,
    그게 요즘은 좀 두렵네요..
    나중에 뭔 소리를 들을지 몰라서..^^

  2. LIVey

    | 2008/04/16 23:31 | PERMALINK | EDIT | REPLY |

    대학 새내기는 이런 글 보면 슬퍼져요 엉엉

  3. 하울링

    | 2008/04/20 23:33 | PERMALINK | EDIT | REPLY |

    on20 창간호에 실린 글이군요 ^^ 왼맘잡이님 반가워요

  4. eunJi.

    | 2008/04/23 16:22 | PERMALINK | EDIT | REPLY |

    듣기만해도 무섭고 보기만해도 숨이 막히는.. 제가 4학년이라서 더 그런가봐요ㅎ
    저마다 하는 일에 따라 배울 것이 다를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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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고시원 생활을 하고 있는 저는 며칠전 자랑스런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신성한 권리이자 의무를 지키기 위해 나놔양과 함께 부재자 투표를 하러 갔어요~

처음가보는 구청까지 구불구불 버스를 타고 힘겹게 구청에 도착했는데,,,

헉...  함께 온 나놔양이 지갑을 버스에 두고 내렸지 뭐에요~
이리저리 전화를 해 버스를 추적해봤지만 이미 지갑은 누군가가 가져가 버렸더군요.

슬퍼하는 나놔양을 달래기 위해 제가 예전에 지갑 잃어버렸던 기억을 떠올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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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갑은 얼마전 어머니가 어디선가 경품(?)으로 받아온 거 랍니다.

이 지갑을 쓰기전에 전 NOM 이라는 브랜드의 지갑을 고1즈음에 친구들에게 생일선물로 받아 꽤 오래 썼었죠.
저랑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은 아시겠지만 이름도 고약한 NOM은 당시 쌈지와 아이작과 함께 나름 잘나가던 브랜드..  ^^;;

여튼,
저도 그리 칠칠치 못한 성격이라 지갑을 잃어버리는 일이 잦았는데,,

한번은...

공돌이 생활을 할때였는데 퇴근하고 좌석버스를 타고 집에 오다가
버스에 지갑을 두고 내린 것이었습니다. 아핫..
내릴때까지도 모르고 있다가 한 30분 지나고 지갑이 사라진걸 생각해내고는 여기저기 방법을 찾았지만 별 도리가 없더라구요.

현금도 없고, 카드도 없어 이러저러지도 못하고 한껏 우울해서는 친구들에게 문자를 돌렸죠.
"내 지갑 이자무따~ 조낸 우울한데 술이나 사라"
그러나..
친구들은 모두 바쁘다느니, 데이트한다느니...
제일 친한 친구 한놈도 고향집에 내려가려고 버스 탔다고..  ㅜ,ㅡ

그럴 때 있죠?
사실 별로 큰일은 아닌데 '삶에 대한 무한한 회의'가 드는...
내가 왜 지금까지 안죽고 살았나,, 
역시 친구란 다 부질 없는 것이구나,,
나름 착하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신은 왜 내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지.. 

완죤 OTL에 우울모드로 방에 콕 쳐밖혀 있는데 한 30분쯤 있다가 아까 고향집에 간다던 친구가 전화가 왔습니다.

"마~ 니 지갑이 와 여기 있노?"

허헐~~
친구는 버스에서 내리려다 발에 차이는 허름한 물체를 발견하고 말았던 것이었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제가 집 근처에서 내리고, 버스는 유유히 종점을 돌아왔습니다.
그 사이에는 사람이 별로 타지 않는 곳이라 텅 빈채로 오다가
제가 내린 반대쪽에서 터미널에 가려던 제 친구가 그 버스를 탄거죠.

제가 문자 할 당시 친구는 제가 앉았던 그 자리에 앉아 있었고, 제 지갑은 친구 발 근처 어딘가에서 애타게 이놈을 부르고 있었겠죠?

그러다 친구가 내릴때쯤에 제 지갑의 절규를 외면하지 못하던 친구의 왼쪽(혹은 오른쪽) 신발이 지갑과의 조우를 가졌고,
친구는 결국 '이게 웬떡'이라며 지갑을 주웠고,
지갑을 여는 순간 보였던 제 사진에
30도 쯤 왼쪽으로 치켜지던 입술이 살짝 떨리며
약간의 욕설과 신기함이 뒤섞여 저에게 전화를 한 것이었어요 ^-^

이날 제가 얻었던 교훈은...

역시 착하게 살면 다시 나에게 돌아오는구나... 
그리고 친구는 이럴때 필요한 것이구나...하는..  ㅡㅛㅡ;;

암튼 이 친구는 5여년이 지난 지금도 이 일을 떠올리며 서로 신기해 하고 있답니다~

여러분들도 모두 착하게 살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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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하러 가다가 보니 초등학교 앞에서 병아리를 팔고 있더라구요.
저는 국민학교 들어갈때쯤(벌써 20여년전;;) 100원에 팔았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은 700원이라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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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기차니스트

    | 2008/04/08 00:02 | PERMALINK | EDIT | REPLY |

    제 여자친구도 가방을 남산에 두고온적이 있었는데,
    고맙게도 데이트 하시던 연인분께서 돌려주셨지요^^=
    다행이네요^^

  2. 산골소년

    | 2008/04/09 17:02 | PERMALINK | EDIT | REPLY |

    와 진기한 사연이군요. 이 사연..
    두시탈출 컬투쇼에 올리시면 뽑힐것 같은데요. ^ ^

  3. onionmen

    | 2008/04/13 10:54 | PERMALINK | EDIT | REPLY |

    진짜 재밌는 사연이네요. 저도 착하게 살고, 친구좀 많이 만들어놔야겠습니다. ㅎ

  4. 제이슨소울

    | 2008/04/15 10:46 | PERMALINK | EDIT | REPLY |

    와 이거 대박입니다
    저도 비슷한 사연이 하나 있긴하지만,
    직접 친구는 아니었는데
    이건 뭐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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