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2012. 7. 15. 13:30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 <꽃>

 

 

 

바람이 불러주는

그의 이름이 있었다.

 

햇살이 비춰주는

그의 이름이 있었다.

 

내가 그에게 눈길을 던져주었을때도,

그의 몸짓은

스스로의 향기와 빛깔로 나풀거리고 있었다.

 

우리들은 모두

나에게, 너에게

제각기 빛나는 수없이 총총거리는 이름을

가슴속에 품고 있다.

 

내 발길이 지나친 후에도

그는

여전히 꽃이다.

 

-왼맘잡이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