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28일 늦은 산책

Posted 2012. 7. 15. 14:14



참 오랫만에 늦은시간 산책길에 올랐다.
창원대 기숙사 연못은 늘 비슷한 모습이지만 늘 다르다.
호수 건너편, 불빛이 훤한 밴치에 자리를 잡았다.
양쪽에서 비춰주는 하얀 가로등.
내 두개의 그림자는 서로 어긋난채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겨우 담배하나를 물었는데 얼마전까지 사장님이던 동네 주민 부부가 다정스레 거닐어오다 나를 보고 흠짓 놀란다.
ㄱ사장님은 이미 여러번 들어왔던 산삼이야기를 또 십여분 쏟아놓고 옆사람의 잔소리에 스르륵 무대 밖으로 딸려 나간다.

우연히, 아주 우연히.. 가방에 실려있던 조금 독한 술을 한모금 넘긴다. 향이 진하다. 독한술의 진한맛을 이해하게 된 사실에 조금 멋적어졌다.

몇몇 커플들이 지나쳐간다. 이어폰을 깊숙히 박아두었지만 재잘거리는 소리가 음악에 섞이는게 영 거슬린다. 여전히 어긋난채 정면을 응시하는 양쪽 그림자가 탐탁지않아 더 어두운 자리로 옮긴다.

올라오는 길, 쌀쌀한 바람에 며칠전 여행의 기억이 떠올랐다. 뭔가를(무엇인지는 아직도 알 수없는...) 생각하기위해 그리도 무던히 걷고 또 걸었는데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돌아오는 버스에서의 그 찹잡한 기분... 읽은지 한참지난 책의 한 문구가 전혀 예측하지 않은 다른 순간 갑자기 이해되듯 그 여행에서 얻은 것이 무엇인지 스며들었다.

담배를 하나, 독한 술을 두어 모금 더 마시다 보니 아까 내가 앉은 자리에 진짜 두개의 그림자가 또 귓가의 음악을 어지럽힌다.

그러는 사이 내 주변으로 두꺼비 두마리와 고양이 한마리가 등장했다 사라졌다. 이번 자리에서는 그림자가 한방향으로 조금 틀어져 두개의 머리를 만들었다. 하지만 밴치에는 여전히 하나다.

귓속 깊이서는 윈터플레이가 진득한 소리를 흘리고 있다. `I`m feeling blue~ I`m feeling down~ I`m feeling blue without you~`

몇년간 비슷한 고민을 해온게 있다. 내 머릿속에서 뿜어야 할 무엇도 생성되지 않는다는 것. 이번 여행에서도..

그거였다. 내가 변한 이유...
Without blue..

아!
12시 55분.
연못가의 가로등이 일제히 꺼졌다! 갑자기 바람이 더 차다.
이제 거슬리던 두 머리의 그림자는 없어졌다. 그러나 밴치에는 여전히 하나다.

딱 담배 하나만 더 태우고 불꺼진 무대에서 내려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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